우리 평화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넷 > 원장님칼럼

본문 바로가기

원장님칼럼
웹진_평화의 동산 > 원장님칼럼

우리 평화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넷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애도 댓글 1건 조회 961회 작성일 07-11-15 13:15

본문

안녕하세요?
여러분!!
입동은 지났지만 이번주엔 싱그러운 가을날씨가 계속되니 춥지도 않고 참 좋네요.
너무 아름답고 상쾌한 이 자연을 창조하신 우리 주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오늘도 이야기속으로 여행을 떠나볼까요? ~

  8`15해방, 1945년 8월 15일 정오. 라디오에서는 중대 발표가 있다고 했다.
  나는 물론 온 백성이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한다는 천왕의 발표였다.  이렇게 쓰러질 일본, 그러나 그들이 스치고 지나간 우리나라는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돌이켜보니 그들은 최후의 발악을 한 것이었다.  그들의 수탈은 물질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육체적 정신적인 데까지 이어졌다.  나는 가장 잔인한 수탈이 국어사용금지와 신사참배강요라고 생각하였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이 말씀이 늘 내 마음에 살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이 일로 학교에서 퇴학을 맞았고, 정신대로 끌려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온 가족의 걱정 끝에 나는 간호학원을 가기로 하였다.  당시에는 간호학원을 마치고 자격시험을 보면 간호사와 산파 자격증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열심히 다녀 두 달 만에 자격시험에 합격하였고, 둘째 오빠의 주선으로 종로을구 구급 간호사로 일하게 되었다.  적군 비행기가 오면 공습경보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리고 대피소로 피했지만 구급의사와 간호사는 구급약품 가방을 둘러메고 다니면서 환자들을 치료해 주었다.  나는 기도 중 일부분이 응답받았다고 확신하였고, 다리에 부상을 입어 걸을 수 없는 지경에서도 폭격의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사명을 다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일본은 심판대에 서게 된 것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쑥대밭이 되었고, 이미 전세가 기울어져감을 눈치 챈 일본인과 일본은 먼저 교회와 교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토지를 빼앗고, 사람들을 교회에 모이게 한 후 집단살인을 저질렀다.  탄합은 독립 후 보복이 두려워 독립운동지도자인 다수의 기독교인들에게 가해졌다.

다음주에 계속됩니다.~

그누보드5
Tel : 031-952-4553 /
사회복지시설 송연재단 평화원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연풍리 주락길46 (구)연풍2리 124-80번지 15003 / 원장 : 최애도, 사업자등록번호 : -
COPYRIGHT(C) 평화원사회복지시설 송연재단.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