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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평화인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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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애도 댓글 1건 조회 951회 작성일 07-11-20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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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평화인 여러분~
 어제 첫눈 내렸는데 보셨나요?^^*
 첫눈이 함박눈인건 참 오래간만인것 같네요
 내리는 눈이 너무 예뻐 아이들과 함께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보았었답니다.~
 밖은 참 춥고, 바람도 많이 불고 그랬지만
 따스한 방안에서 우리의 마음은 참으로 좋았답니다.^^
 그 편안했던 마음과 함께오늘도 이야기속으로 ~슝하고 떠나볼께요.

  어느날 일본경찰이 찾아 왔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잡혀 갔는데 그곳에는 이미 훌륭하신 분들로 빼곡이 차 있었다.  고문을 당하면서 내가 끌려온 이유를 알게되었다. 반일 학생으로 퇴학당한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육체는 참으로 고통스러웠으나 마음속으로는 기쁘기 한이 없었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감히 이렇게 훌륭하신 어른들과 애국애족의 반열에 설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기뻤고, 고문을 받으면서도 감사할 수 있었다.  나는 옥중에서 천왕의 항복발표를 들었다.  발표가 끝나자 누군가 큰 목소리로 "대한민국 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서슬 퍼렇게 독이 올랐던 일본 관원들은 도망가기 바쁜데 반해 착하고 선한 우리 민족들의 눈은 강하게 빛나기 시작하였다.

  1945년 10월부터 모든 학교가 수업을 시작하였다.  둘째 오빠는 나에게 이화여자대학교에 가기를 권하였으나 나는 기도에 따라 수도여의전 (현 고려의과대학 전신)에 가고 싶었다.  당시 이화여자대학에는 의과대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느 누구의, 어느 무엇의 간섭도 없이 오직 공부하는데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하던가. 2개월이 지날 무렵부터 몸에 이상이 왔다.  양의도 한의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였으나 몸은 점점 쇠하여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그냥 잠만 자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죽어도 부모 밑에서 죽어야 한다는 부모님을 따라 시골집으로 향했다.  한의가 좋다는 약이란 약은 다 먹었으며, 교회 전도사님과 장로님들, 목사님이 찬송과 기도로 늘 함께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몽롱한 상태에서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흰색 가운을 입고 병원에 거만하게 앉아서 밀려오는 환자를 치료하고 있었고 책상 위에는 돈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정신을 차린 후 생각해 보았다.  "내가 의사가 되면 정말 그렇게 될까?" 라는 의구심과 꿈속에서 본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의 부축을 받아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고, 주님은 "새 학기가 되면 신학교에 가라"는 응답을 주셨다.

  새 학기가 시작되자 나는 감리교 신학교로 향했다. 

  다음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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